고정관념을 버리면 지혜가 드러난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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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림사 댓글 0건 조회 727회 작성일 21-03-19 11:41본문
〈고정관념을 버리면 지혜가 드러난다 下〉
-삿된 견해의 뿌리는 탐욕이다
사견을 버리고 바른 견해를 갖춘다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삿된 견해의 밑뿌리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삿된 견해의 뿌리는 바로 탐욕, 집착에 있어요. 그래서 삿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집착을 버려야 하고,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는 집착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여러분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삿된 견해를 버리기 위해 성스러운 제자를 친견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일단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 배워야 된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성자들의 바른 가르침을 배우면 그동안의 자기 견해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견해가 맞는지 안 맞는지 검증하고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세속적인 삶에서 수행자의 삶으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밖에서는 욕망의 지배를 받지요.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향입니다. 그러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화로 반응하고, 화풀이를 하고, 또 사람을 제압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뜻대로 안되면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온단 말이에요. 요즘은 사회적으로 윤리교육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해서 사람들의 분노조절 기능이 상당히 약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화가 났을 때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상당히 약해진 거 같아요. 그래서 그걸 분출하지 않고는 못 버티는 거죠.
-탐욕 없이 세상의 일을 이루는 네 가지 방법
탐욕과 성냄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속에서 탐욕이나 성냄으로부터 벗어나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해야 할 일도 있고 원하는 것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욕심이 있어야 일을 이루지 욕심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어요.
이에 관해서 부처님께서 세상의 일을 이루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해 놓은 게 있습니다. 네 가지 성취수단이라고 하지요. 사여의족四如意足이라고도 하는데, 집착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도인 열의와 열망이 강하면 그 일을 이룰 수가 있어요. 또, 노력을 열심히 하면 이룰 수가 있습니다. 또, 지혜가 있으면 일을 이룰 수가 있어요. 그 다음에 마음이 굳건해도 일을 이룰 수가 있는데, 이렇게 부처님은 어떤 일을 이루더라도 탐욕이나 성냄에 바탕을 둔 부당한 방법으로 이루는 게 아니라 이런 네 가지 성취수단을 통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해 놓으셨습니다.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해도 충분히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거죠.
-탐욕과 성냄을 바탕으로 살아가던 삶에서 번뇌가 없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행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사고구조를 바꾸는 겁니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해요. 과거에 세속에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올바른 신행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모양이나 개념은 불자이지만 내용은 그냥 자기가 해오던 그대로 하는 거죠.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거든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인식의 전환의 대표적인 게 탐욕과 성냄을 바탕으로 살아가던 삶에서 번뇌가 없는 삶으로 바뀌는 것, 번뇌가 없이 이루어내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탐욕을 바탕으로 하던 것을 탐욕 없이 하는 방법을 계발해야 됩니다. 그걸 익혀야 됩니다.
-열의와 탐욕
그런데 탐욕이 없는 부처 되려고 하는 것도 탐욕 아니냐는 말을 제일 많이 합니다. 불교에는 두 가지 용어가 있어요. 빨리어로 찬다chanda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뭔가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처가 되고자 하는 것, 이건 찬다입니다. 그리고 성공하고자 하는 것, 이것도 찬다입니다. 그런데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하고자 하는 그걸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겁니다. 그러나 탐욕이라는 건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게 탐욕이고 집착입니다. 우리 같은 수행자들이 부처가 되고자 하는 방향을 가지고 있는 건 찬다입니다. 그쪽으로 내가 가겠다는 거죠. 방향성과 의욕을 가지고 해야 된다는 거죠. 수행자들은 결과에 집착을 하는 게 아닙니다.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못 살겠고 괴롭고, 과정이 힘들고 이런 것이 아니에요.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될지, 해야 할 조건들만 성숙시켜 나가는 거죠. 지금 이 순간에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번뇌 버리는 것에 집중을 하면 돼요. 그러면 탐욕도 버려야 될 대상이거든요. 이런 노력을 하면 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어요. 그런데 세속에서 탐욕을 통해서 뭘 한다는 건 안 되면 괴롭고 더 빨리 하기 위해서 바르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렇게 이루는 것이 세속적인 방향입니다.
비록 속도가 느리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자신이 덜 먹고, 덜 쓰더라도 남을 해치거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쓰지 않고 바른 방법으로 가다보면, 멀리 봤을 때 분명히 좋은 쪽으로 갑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요. 물론 밖에서 볼 땐 더디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러나 속도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빨리 이루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이루었는지가 중요하지요. 나쁜 일을 해서 이루어놓으면 나중에 과보가 익을 때는 엄청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찬다는 뭔가를 하고자 하는 것이고 빨리어로 로바lobha라고 하는 탐욕은 비유를 하자면, 끈끈이풀과 같은 겁니다. 하고자 하는 것에 달라붙어서 그걸 못하면 안 되는 쪽으로 가는 거죠. 죽어라고 들러붙어서 이것이 주된 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큰 고통이 동반됩니다. 원하는 것에 딱 달라붙어 집착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안 되면 상당히 괴로워지는 거죠.
그런데 이 찬다도 로바를 바탕으로 한 찬다가 있어요. 이게 로바와 결합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되고, 빤야라고 하는 지혜를 바탕으로 하면 이건 좋은 쪽으로 갑니다. 결과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조건을 성숙시키는 쪽으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차근차근 해야 될 걸 하다보면 결과를 이루게 되겠죠.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자신을 먼저 성찰하면 관점의 변화가 생긴다
성냄을 바탕으로 이루기 위해서 남의 욕도 하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불자의 삶이 되면, 자애심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태도로 바뀝니다. 소위 성냄이 아니라 자애를 바탕으로 일을 하는 거죠. 이것이 사고구조가 바뀌는 거고,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겁니다. 항상 남을 탓하던 것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거지요. 저 사람과 나의 관계가 안 좋아지는 건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남을 무시하거나 배려하지 않은 건 아닌가, 세상을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새로운 관점과 생각으로의 변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살아왔는데,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과는 패러다임이 다릅니다. 욕망을 통해서 이루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이루는 방식이 달라져요. 욕망을 바탕으로 하면 성냄도 동반되는데 이제는 지혜로써,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어떤 조건을 성숙시켜야 되는지에 따라 차근차근 해 나가면서 결국은 자기 일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바뀐다는 거죠.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 안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어갈 때 제일 먼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작업은 자신의 견해를 너무 고집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견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남의 말을 안 들어요.
저도 옛날에 그런 경험이 있는데, 출가하기 전에 제가 배웠던 분의 견해가 지금 생각해보면 좀 바르지 않은 견해였어요. 그런데 그 때 당시 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또 여기에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함정이 숨어 있었던 거죠. 머리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 판단한 게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자만인데,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오류에 상당히 많이 빠집니다. 대부분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자기기준에서는 정확해도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저는 기고만장하고 자만이 좀 있을 때라서 인정을 잘 못했어요. 제가 배운 사람은 진아眞我를 주장하는 사람이었는데 옆에서 지혜로운 선배들과 먼저 출가한 스님들이 저한테 충고를 했어요. 그 사람 좀 이상하다, 나와라, 그거 잘못된 견해다, 이렇게 진심으로 충고를 했는데, 저는 속으로 그 스님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무시했죠. 제 생각에 빠져 그런 말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나중에 어떤 계기로 제가 거기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느낀 거예요. 아, 내가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때 내가 못 들었구나, 하고 알게 된 거죠. 이 일을 겪고 나서는 제가 생각하는 것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항상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다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더 지혜로운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정말 아라한이 되어서 모든 걸 끝낼 수 있기 전까지는 견해라고 하는 것은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지혜로운 사람의 지나가는 말 하나라도 귀에 꽂힐 수 있어요. 아, 참 지혜로운 말이다, 저런 말은 들어야겠다, 이렇게 되지만,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옆에서 좋은 얘기를 해도 안 들립니다. 자기 식으로 재구성을 해 버리는 거지요. 그러면 아무리 훌륭한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배워도 결국은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모든 걸 자기 식으로 이해하는 거죠.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법문을 몇 년을 들어도 자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생각 속에 빠져 있으니까 아무리 얘기해도 또 자기 생각으로 전환을 해 버리기 때문이에요. 자기 식으로 이해를 해 버리는 거지요. 저도 예전에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 사람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또 내 식으로 이해하고, 내 식으로 바라봤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를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유를 하자면 붓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대롱을 앞에 놓고 하늘을 보면 자기가 보는 그 하늘만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붓대롱을 치우면 진짜 하늘이 보이지요.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항상 보는 눈이 붓대롱으로 보는 정도밖에 못 본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불교를 공부하는 건 탐욕으로 살아가는 세상으로부터 탐욕을 벗어나는 삶을 사는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속에서 아무리 나이가 많고 지혜가 많다 하더라도 이 세계에서는 아직은 걸음마예요. 이제 시작을 하는 거죠. 이런 마음자세로 공부를 해야 진짜 공부가 되고, 어느 정도 방향을 잡으면 여러분이 공부했던 게 다 살아납니다. 더 좋은 쪽으로 재구성이 되지요. 자신이 공부했던 걸 너무 고집하면 정말 부처님께서 말씀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수가 없어요. 부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배우는 것이 불자로서의 삶의 전환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해도 부처님 가르침 중에 아, 이건 받아들일 만하네, 그러면서 받아들이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린데, 그러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이러면 불교를 공부한다기보다 자기 입맛대로 공부하는 것에 불과한 거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일단 자신의 견해에 대한 고집을 깨는 것이 첫 번째 과정입니다. 자신이 깨져야 되니까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고 괴로움도 많이 겪어요. 힘들고 내적인 고통이 있죠. 하지만 집을 한 번 부수어야 새로 지을 수가 있거든요. 마치 마음에 종기가 있을 때 종기를 짜는 것은 힘들고 아파요. 하지만 내버려두면 곪아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지혜로운 스승과 도반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바꿔 나가는 것이 불자로서의 삶입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렵습니다. 경전에서도 도반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죠. 도반의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보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자기를 보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 보려고 해도 자기를 보는 연습이 안 되어 있고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자기가 볼 수 있는 그 틀에서만 보는 거지요. 틀을 벗어난 것은 참 보기가 어렵거든요.
그러나 옆에 있는 도반이나 스승은 그런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애착이 많아 참 보기 힘든데 다른 사람은 잘 보이거든요. 실제로 자기 번뇌는 잘 안 보여도 남의 번뇌는 잘 보여요. 스스로 하는 것에 비해 특히 지혜로운 사람이 옆에서 도와주면 굉장히 빠릅니다. 그래서 수행은 항상 스승과 제자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승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세속에서도 도제관계가 있지만 특히 수행은 계속 탁마를 해줘야 되기 때문에 스승의 역할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자기 스스로 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가 최근에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곪은 일이 있었어요. 스리랑카에서 비오는 날 흙탕물 속을 걸어 다녔더니 감염이 된 것 같아요. 이렇게 곪았을 때 자기가 고름을 짜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의사는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찌르지요. 찌르니까 아픈데 짜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잘 낫습니다. 스승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건드리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손대기도 싫고 보기도 싫어 외면하는 건데 옆에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그걸 건드려주면 아주 쉽게 극복할 수 있거든요. 자신도 모르게 아차, 하는 순간에 일단 당하고 나면 고름이 나오고 있고 그러면 회복되기가 빠르죠. 물론 이런 건 스승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치고 박고 싸움이 일어나고 큰일 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자신이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도반, 또는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견해와 문제를 보고 극복해 나가는 게 좋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잘못된 견해가 있다는 건 수많은 꼬임이 있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마음이 꼬여 있다는 거거든요. 꼬여 있고 종기도 있고 온갖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짜내고 제거를 하고 나면 정말 편안해집니다. 세상을 살기가 정말 편안해져요.
보통 마음속에 번뇌가 들어 있기 때문에 외부 자극에 의해서 번뇌가 분출되는 겁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듯이 수액에 관한 경전이 있습니다. 나무에 수액이 있는 경우 나무를 찌르면 수액이 나오지만, 나무가 바짝 말라 수액이 없으면 아무리 찔러도 수액이 나오지 않지요. 이처럼 여러분 마음에 바르지 않은 견해들이 있으면 누가 옆에서 찌르면 바로 반발하고, 조금만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하고 화를 냅니다. 하지만 번뇌들이 가라앉은 사람은 언제나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첫 째는 자기 견해를 너무 고집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조금 아는 것으로 함부로 하는 사람은 세상을 붓대롱으로 보는 것과 비슷해요.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죠. 옛날에 뉴턴도 자신이 공부한 건 바다에서 모래알 주은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잖아요. 진리를 대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겸손해야 됩니다. 자만에 빠진 태도로는 절대 이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없어요.
겸손하게 배우겠다는 자세, 다시 걸음마 한다는 생각으로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부처님의 방식과 생각을 배워야 합니다. 아, 이건 도저히 모르겠다고 배척하려 하지 말고 부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의도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문제점들을 잘 극복해서 깨어 있고 열린 마음자세가 됩니다. 자기 것을 너무 고집하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는 사람은 배울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면 자기 견해를 너무 고집하지 말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항상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배우려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게 좋아요. 지혜로운 사람의 말을 듣고 귀를 기울이면 여러분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이렇게 하시다보면 자기 견해에서 좀 벗어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탐욕과 성냄 없이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한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탐욕과 성냄, 번뇌를 가지고 사는 것밖에 알지 못했는데, 그것을 벗어난 삶을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다음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준 세속과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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