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알면 마음이 보인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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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림사 댓글 0건 조회 673회 작성일 21-03-19 11:32본문
<몸을 알면 마음이 보인다 上>
-몸과 마음은 서로 의지하여 일어난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질문하는 ‘마음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알아차리는 대상을 몸과 마음, 이 두 가지로 나눴을 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수행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수행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몸과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서로 의지하면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실제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수행을 이끌어나가고 어떤 식으로 수행을 해 나가는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림
우선 알아차림이라는 것의 과정을 이해하면 실제 수행하는 데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첫 번째 원칙 중 하나는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here and now,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위빠사나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과거에 지나간 것이 나중에 수행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들이 현재에 대한 알아차림이 잘 되어 찰나삼매라든가 삼매가 형성이 되면, 그 때 과거를 대상으로 반조나 조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 먼저 이해를 해야 실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경전에서 담마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법’이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그 일에 대해 파악을 하는 것이 수행에서는 첫 번째 중요한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그 대상과 만나는 그 자리에서 이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접적인 지혜로 보기
그 다음으로는 ‘생각 없이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상을 직관적으로, 즉 직접적인 지혜로 알아차려야 한다는 거지요. 개념화 작업이나 관념적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가 외부대상을 인식할 때 보통 이름과 개념을 통해 인식을 했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다’, ‘뭐다’ 이렇게 이름을 통한 접근을 하는데 직접지라는 것은 이런 이름을 빌지 않고 그냥 일어나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탁 알아차리는 것, 직접적인 지혜로 아는 것을 얘기합니다. 이렇지 않고 개념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하면 자기 업식이 작용하고 실상을 보기 어렵습니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대상을 인식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저를 ‘일묵’, 이렇게 이름으로 접근하면, 이미 여러분에게 일묵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만 접근을 하지요. 하지만 저라는 존재는 매순간순간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하는데 개념으로 접근하면 그런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것들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물론 처음에는 생각을 배제하고 직접적으로 보는 것이 어렵지만 훈련을 하면 순간적으로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가면 관념화되고 개념화된 형태로만 접근이 되고, 사물의 실상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왜곡된 인식이 작용하기 쉽다는 거지요. 자기 나름대로 형성된 관념과 개념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적인 지혜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념과 이름 없이 그대로 알아차리기, 찰나삼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렇게 컵에 닿는 느낌을 ‘닿음’이라고 하면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그냥 단지 이 닿는 느낌을 어떤 개념에도 의지하지 않고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통해서 현상을 알기 시작하면 개념이라는 것이 실상과 우리 인식 사이의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 없이 접근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게 되는데, 자꾸 연습을 하다보면 점점 실상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수행 초보자에게 호흡을 가르칠 때도 처음에는 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게 들어가는 숨에는 들숨, 나가는 숨에는 날숨이라고 이름을 붙여 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계속 진행되다보면 숨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이 잘 안됩니다. 이름 때문에 이름이 대상이 되어버리고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실상, 실제 내용을 보지 않고 그 이름에 빠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을 책이라고 하면, 책이라는 것은 이름이고 책이라는 것 속에 담겨 있는 이것이 종이로 되어 있고 이것의 실제 모습이 있잖아요. 책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름을 붙은 것이고, 실제로는 이것이 종이와 결합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이름을 붙여 개념으로 접근하며 살아왔지만 진리나 실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런 개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멀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개념적 접근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언어와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언어와 개념이 배제된 상태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연습이 됩니다. 이렇게 개념 없이 그대로를 아는 것, 이것을 찰나삼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숨으로 비유를 들자면, 숨 자체를 우리가 들숨날숨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할 때와 숨이 들어가는 그 상태,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이것도 일종의 공기잖아요. 이 숨이라는 것을 그대로 개념 없이 탁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수행이 잘 되면 다른 생각 전혀 없이 숨을 아는 그 마음상태만 그대로 있게 됩니다. 여기에는 어떤 생각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숨이라는 그 자체를 아는 그 마음만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다른 대상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종(Bell)이라는 것을 볼 때도, 종이라는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냥 이 대상이 존재하는 그대로 아는 마음만 일어나는 겁니다. 다른 번뇌나 다른 생각이 모두 배제된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아는 그것만 있게 되는 상태가 찰나삼매입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아서 보통 현상들이 지나간 다음에 그것을 아차, 하고 알아차리고 마음이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럽니다. 사띠(Sati)를 번역할 때 챙긴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렇게 마음이 딴 데로 도망갈 때 도망가지 않도록 마음을 챙겨라, 마음챙김하라는 겁니다. 알아차림이라고도 하지만 알아차림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의미가 강하고, 챙긴다는 것은 마음이 불선한 마음이나 엉뚱한 데로 가지 않게 잘 보호하고 챙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걱정과 생각의 바탕은 욕망과 분노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걱정 저런 걱정 쓸데없는 생각들로 계속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생각들의 바탕은 욕망이나 분노입니다. 오늘 아침에 남편과 싸웠는데 왜 저랬을까, 하고 남편에 대한 분노가 바탕이 되어 생각들이 이어질 수 있고 아들한테 그럴 수 있고, 오가다가 누구와 부딪쳤을 때 rm 잔재가 남아서 생각이 이어질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대체로 우리 삶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좀 걷히는 것만으로도 사는 것이 굉장히 단순해집니다.
-생각 걷어내기와 다섯 감각대상의 드러남
사마타 수행이든 위빠사나 수행이든 첫 단계로 생각을 걷어내는 작업은 거의 공통적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생각이 걷히게 되면 다섯 가지 감각대상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생각들에 휩쓸렸지만, 생각들을 걷어내고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을 보는 것, 몸에서 오는 감각들, 이런 것들이 남게 됩니다. 이것을 다섯 감각대상이라고 합니다. 수행에서 생각이 좀 걷어졌을 때 이 다섯 가지 감각대상이 드러나는 것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수행의 출발점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알아차림의 주된 대상이 되는 게 위빠사나에서 초보적인 한 단계를 나아갔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것이 이제 소위 물질을 보는 겁니다. 색, 성, 향 ,미, 촉이라고도 하는 다섯 가지 감각대상, 아름다운 형상을 보고 싶은 것, 좋은 소리와 냄새를 맡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것 등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웬만한 산업들이 모두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는 자기가 본 것을 찍어놓고 계속 보고 싶어 하는 형상에 대한 갈애가 작용하는 거잖아요. 이 카메라 시장이 자동차보다 더 큰 시장이라고 합니다. 향수 산업은 냄새, 음악은 소리에 대한 갈애 등 주위를 둘러보면 감각적인 것을 자극해서 돈을 벌고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주된 것들입니다.
-감각접촉이 일어나는 자리 보기
그런데 감각적인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생각이란 것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움직일 땐 생각에 덮여 보이지 않지만 생각이 좀 걷히면 감각대상들의 작용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형상을 만나기 위해선 눈이 필요합니다. 나중에는 이 형상을 알아차리면 이 형상을 아는 눈도 더불어 알아차려집니다. 형상과 눈이 만나면 거기서 우리가 보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아는 마음, 대상에 대해서, 본 것에 대해서 생각이 진행이 되는 거죠. 저건 예쁘다, 저건 무슨 색일까, 저건 누가 했을까 등 이런 내면의 수다가 생깁니다. 이렇게 생각이 벌어져서 대부분 우리의 인식 과정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감각대상과의 만남, 감각접촉이 일어나는 그 자리를 보기는 어렵지요. 생각으로 이미 발생한 것에 대해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이런 생각이 걷힌 상태를 봐야 합니다. 생각을 한참 하고 난 다음에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네.’라고 알아차리는 것은 알아차림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이미 생각에 놀아난 그 상태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그 상태, 형상과 눈이 만나서 거기서 보는 이 자리, 실제로 지금 발생한 자리, 이것에 대해 알아차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좌선하는데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소리로만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일인데 이 소리에 대해 자신의 번뇌가 작용하는 겁니다. ‘이 소리는 무슨 소리다’, ‘저 소리 때문에 수행이 안 된다’, ‘저 사람 때문에 수행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 번뇌가 계속 움직이는 겁니다. 이 밑뿌리에는 성냄, 도사(Dosa)가 작용합니다. 그 소리가 싫은 거지요. 싫은 마음이 있어 이런 생각들이 계속 움직입니다. 아, 저런 소리가 들린다, 하고 그것만 알면 되는데 거기에 화라든가 집착이 들어가면 그 생각에 의해 우리가 제압당하고 그 생각에 휩쓸리게 되면 위빠사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실상이 아니라 생각에 놀아난 것입니다.
소리를 소리로만 보고 형상을 형상으로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게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이러한 감각대상에 대해, 형태다, 소리다, 냄새다, 맛이다, 여기서 끝나라는 겁니다. 이게 직관적으로 보는 겁니다. 일차적 인식에서 멈추고, 거기에 대해 개념을 만들고 생각을 하고 좋거나 싫다는 분별을 하는 것을 자꾸 멈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알아차림 수행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본다’는 것
말씀드렸듯이 생각이 걷히면 색, 성, 향, 미, 촉이라는 다섯 가지 대상이 나타나게 되고, 다섯 가지 대상이 나타나면 우리가 안, 이, 비, 설, 신이라고 하는 눈, 귀, 코, 혀, 몸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감각기능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만남에 의해 일어나는 보는 마음, 듣는 마음,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는 마음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다섯 가지 감각대상이 있으면 그걸 아는 마음,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이것을 분노로 아느냐, 아니면 탐욕으로 아느냐, 그냥 있는 그대로 아느냐, 이런 것을 알아차리는 게 바로 ‘마음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적으로 ‘아는 마음’과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지켜보는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굳이 구분하지 않더라도 하나는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이고, 그 인식한 마음, 아는 마음을 다시 알 수 있잖아요. 이것을 우리가 ‘마음을 본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마음을 안다,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감각대상을 아는 그 마음, 그 마음에 대해서 다시 이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대상을 아는 것은 일차적인 것이고, 대상을 아는 마음을 다시 아는 것은 이차적인 것이지요.
- 바깥으로 향한 마음을 돌려 내면이 대상과 어떻게 관계하는지 보기
그런데 보통 많은 사람들이 대상을 아는 데서 멈춰버립니다. 이 대상을 아는 이놈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걸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걸 알아야 실제 수행이 가능합니다. 제 생각에 진짜 위빠사나의 시작은 마음을 볼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에 몇 십 년을 다니고 수행을 몇 십 년을 해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고 원래 성격 그대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대부분 대상에만 빠져 있고 자기 마음을 볼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바깥 대상과 관계하는 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몇 천 년이 지나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마음을 정화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내 마음을 알아차려야 그 마음에 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상을 향해 있지 이 마음을 볼 줄도 모르고 보는 힘도 없습니다. 일어나는 문제는 대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일차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분노로 관계하는구나, 또는 탐욕으로 관계하는구나, 이걸 자각하기 시작하면 자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여러분이 마음만 딱 먹으면 바로 인식의 전환입니다. 이런 걸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도 하고, 화두에서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 하고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하는 그게 마음입니다. 이게 밖으로 향해 있던 우리 마음을 돌리는 작업입니다. 바깥 경계에 휩쓸리는 게 아니고 자기 내면이 어떤 식으로 관계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건데, 밖으로 향해져 있는 마음을 바깥하고 관계하는 대상과 만날 때 어떤 식으로 마음이 일어나는지, 이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는 것을 어떻게 보면 불교수행에 있어서는 출발점이고, 이것이 되면 여러분은 변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보기 위해서는 그냥 마음만 보려고 하면 잘 안 보입니다. 일단 감각대상을 알아야 하고, 색, 성, 향, 미, 촉이라는 것이 뭔지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안, 이, 비, 설, 신이라는, 눈, 귀, 코, 혀, 몸이라고 하는 것이 뭔지를 알 수 있으면 이 두 가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게 바로 마음입니다. 그게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 막대기가 있고 종이 있습니다. 이 두 개가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소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막대기로 종을 쳐야 소리가 일어납니다. 종을 눈에 비유하고 막대기를 형상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눈과 형상이 만나는 거기에서 소리라는 우리 마음이 일어나는 거라고 비유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막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감각대상입니다. 다섯 가지 감각대상을 만나고 그 대상과 접촉이 일어나는 감각기능이라고 하는 걸 알게 되잖아요. 막대기로 종을 쳐서 소리가 나는 것처럼 감각기능과 감각대상이 만나면 거기서 식(識)이 발생합니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식(識)도 안 일어납니다. 마음도 안 일어납니다. 이것이 일어나는 거기에서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를 보는 것을 바로 ‘지켜본다’, ‘마음을 알아차린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 움직이는 것 보기
물질을 아는 것과 마음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물질은 우리가 평소에도 항상 접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것을 아는 그 마음을 아는 것은 정신을 안 차리면 불가능합니다. 계속 경계에 휩쓸립니다. 예쁜 여자가 나타나고, 좋은 물건이 보이고, 흥겨운 노래가 나올 때마다 거기에 미쳐버린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심이 완전히 없어지고 마음을 놓쳐버립니다. 그래서 잘 챙기라는 의미에서 마음챙김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완전히 뺏기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인데, 이것도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자로서 전환점이 됩니다. 대상에 끄달리는 삶을 살다가 이제 자기 마음의 상태를 보기 시작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요. 바깥세상이 있지만 마음의 세계를 보기 시작하면 우리 마음에서 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영역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입니다. 그래서 이걸 이해하기 시작하면 불교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서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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